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
이사카 고타로 지음, 인단비 옮김/황매(푸른바람)
독특하고 기발한 상상력의 소설들로 주목 받아온 일본 작가 이사카 고타로의 장편소설. 2003년 출간되어 이듬해 제25회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의 두 주인공은 밥 딜런의 노래를 들으면서 오늘도 누군가를 기다리는 남자 '가와사키'와 밥 딜런의 노래를 부르다가 서점 털기에 말려들고 만 남자 '시나'다.
대학 입학을 계기로 자취를 하게 된 남학생 시나가, 옆방 남자 가와사키와 만나는 시점에서 소설이 시작된다. 시나를 만난 가와사키는 대뜸 이웃에 사는 외국인에게 사전을 선물하고 싶으니 서점을 습격하자는 제안을 한다. 반강제로 가담하게 된 시나는 습격의 진정한 목적과 그 뒤에 숨겨진 가와사키와 부탄 사람, 그리고 한 여성의 이야기를 밝혀 나간다.
책을 읽기 전 영화부터 보았다. 에비스영화관에서 보았던가? 보고 난 느낌은 굉장히 만족스러웠는데도 막상 떠올리려고 보니 에이타가 부탄인에 기가 막히도록 너무 어울리더라는 거 외엔 생각이 나지 않아서 신선한 기분으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읽으면서 영화 속 인물들이나 줄거리가 조금씩 생각나는데 도무지 코토미와 펫숍 주인인 레이코의 얼굴이 도저히 생각나지 않아 결국 영화를 다시 보기로 했다. 책을 읽고 다시 보니 영화는 책의 내용을 좀더 간단명료하게 해주기 위해 작은 장치들을 잘 설치해두었다. 그리고 영상적인 표현도 훌륭하고. 하지만 시간적 제한이 있는 영화에 비해 책이 감정선이 훨씬 도드라져 읽기 편하다. 책을 읽으면서 펫숍 주인인 레이코씨의 얼굴을 계속 생각해보려 했지만 생각나지 않아 멋대로 생각하며 읽었는데 영화를 직접 보니 상상했던 배우가 아니다. 무표정한 인상에 얼굴이 하얀 인형처럼 예쁜 레이코는 네네언니도 어울리지만 나가사쿠 히로미도 굉장히 어울릴 듯. 읽는 내내 나는 나가사쿠 히로미가 주먹을 날리고 퉁명스럽게 말하는 걸 상상하며 읽었더랬다. 왠지 네네 언니에게 맞으면 넉다운 될 것 같지만 히로미씨가 때리면 좀 쌈이 되지 않을까.ㅋ 웃으면 너무 이쁜 사람인 네네 언니의 무표정한 얼굴은 포스가 너무 무서워서 계속 떠올리기엔 무리.
사는 동안 의지와는 상관없이 타인과 만나고, 타인과 사랑하며, 타인과 헤어지고, 그리고 죽는다. 때론 의지가 발휘되는 때도 있지만 의지만으로 어떻게 할 수 없을 때가 더욱 많다. 얼핏보면 외국인을 대하는 일본인의 폐쇄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는 듯하지만 사실은 타인에 대한 두려움과 배척에 대한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타인에 대해 관심없던 펫숍 점장 레이코씨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은 돕고 싶다는 마음으로 변하게 하는 것도 사랑의 힘이요, 누군가를 죽이고 싶어지는 것도 사랑의 힘이다. 사랑이란 이성 간의 사랑만이 아닌 여러의미에서의 사랑.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는 것이 사랑. 타인들과 함께 살다보면 그들은 더이상 타인이 아니다. 어느새 나도 모르는 인연이 되어 있다. 그 인연의 방향을 종잡을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는 퍼즐의 묘미일지는 모르지만 역시나 종잡을 수 없기에 두렵기도 하다. 그 퍼즐은 코인로커에 갇힌 신께서도 모르는 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