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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나는 외로워서 행복하다 [필름2.0 기사]

by 따즈 2004. 4. 27.

올 들어 벌써 두 편의 영화에 연달아 이름을 올렸다. <그녀를 믿지 마세요>와 <아홉살 인생>에서 그의 선율이 흘러나온다. 믿을 만한 그녀의 서른여섯 피아노 인생. '별걸 다 기억하는 남자'들이 꼬치꼬치 캐물었다.

장병원(이하 '장') <아홉살 인생> 음악감독은 어떤 계기로 맡게 됐나?
노영심(이하 '노')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앞으로 이런 작품을 다시 만나기가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정말 나에게 딱 맞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김세윤(이하 '김') 뭐가 자신과 딱 맞는다는 건가?

노 : 감성적인 코드가 맞는다는 뜻이다. 내가 그렇게 느끼기도 전에 주변 사람들이 ‘이건 정말 너랑 맞는 영화야’ 라고 애기하더라.(웃음) 물론 한지승 씨(지난 2001년 노영심과 결혼한 영화감독. <고스트맘마><찜><하루>를 연출했으며 <그녀를 믿지 마세요>를 제작한 영화사 ‘시선’의 대표이기도 하다)가 시쳇말로 ‘펌프질'도 많이 했다. 이 영화를 제작하신 황기성사단의 황기성 대표님과 지승씨 사이가 각별하다. 한지승 씨가 "아버님"이라고 부른다.

장 : 전에도 종종 영화 음악 작업을 한 걸로 안다.

노 : 여균동 감독의 단편 <외투>로 시작해서 총 여섯 편? 장편으로는 네 편째다. <꽃섬><미인><그녀를 믿지 마세요><아홉살 인생>까지.

장 : 아까 말한 ‘감성적으로 맞는 영화’의 기준으로 보자면 <미인>은 의외였다.

노 : 나도 의외였다.(웃음) 균동이 오빠(여균동 감독)가 시나리오 작업할 때 이런저런 얘기를 같이 나누다가 ‘그래, 음악은 니가 해라’. 이렇게 된거다. 대신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음악을 피아노로 다해보겠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피아노만으로 연주한 영화 음악을 해보고 싶다는 욕심을 늘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음악이 잘 어울렸다. 벗은 몸하고.(웃음)

장 : <그녀를 믿지 마세요>는 어땠나?

노 : 덕분에 하드 트레이닝을 했다. <꽃섬>이나 <미인> 같은 영화와는 규모나 시스템 면에서 완전히 다른 영화다. 일이 너무너무 많아서 정신이 하나도 없더라. 어쩌면 한지승 씨가 그런 상업 영화의 시스템을 한 번 공부해 볼 기회를 제공해준 건지도 모르겠다. 조영욱 씨가 음악감독이었고 난 작곡을 맡았는데, 조영욱 감독이 겉으로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알게 모르게 속앓이를 했을 거다. 신인 작곡가 썼으면 편했을 텐데 제작자 부인이니 뭐라고 말도 못하고.(웃음)

김 : <그녀를 믿지 마세요> 끝나자마자 바로 <아홉살 인생>이다. 영화감독하고 결혼한 이후 영화 음악에 부쩍 관심이 많아진 건가?

노 : 난 그저 영화 음악 작업이 나에게 잘 어울린다고 느낄 뿐이다. 특히 영화 주제곡을 만드는 게 너무 좋다. 영화를 만들면서 경험한 과정들이 그 노래 속에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느낌, 그런 게 주는 희열이 대단하다. 돌이켜 보면 예전에 TV에서 진행했던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가 영화의 음악감독이 하는 역할과 비슷한 일이었던 것 같다. 한 프로그램마다 기승전결을 따져서 맥락에 따라 음악 구성을 직접 했으니까. 그런 관심이 확장된 걸로 보면 된다.

장 : 나름대로 다양한 장르와 규모의 영화에서 음악을 맡았다. 한국의 영화 음악 작업 환경은 어떤가?

노 : 무엇보다 예산이 중요하다. 영화사에서 제시하는 예산은 곧 영화에 대한 그들의 마인드를 얘기해준다. 그에 따라 내 마인드도 정해진다. 이건 정말 내 돈 들여가면서 해야겠다, 하는 결심을 하는 영화가 아니라면 주어진 예산을 오버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열이면 열 모두 ‘이 영화는 영화 음악이 정말 중요합니다’라고 막상 작업을 시작하면 자꾸 예산을 깎으려 드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시간에 쫓기는 거야 늘 겪는 일이고. 편집이 끝난 영화에 맞춰 음악을 하려다 보니 음악을 전개할 만한 길이가 안 나오는 장면도 태반이다.

장 : 그런 상황에 대한 대안은 있나?

노 : 시나리오 읽고 내가 상상한 음악을 촬영 전에 미리 들려주면 좋겠다. 설사 나중에 잘리더라도 이 장면은 이 음악에 맞춰 한 번 찍어봐 주세요, 하는 것. 감독이 머릿속에 그 음악의 템포를 염두에 두고 찍는 장면이라면 정말 그 리듬감이 살아 숨쉴 거라고 믿는다. 아직까지 한번도 못해봤다. 외국엔 그런 작업 방식을 많이 쓴다고 들었다.

장 : 영화는 많은 스탭과 함께 작업하기 때문에 혼자 음악 하던 때보다는 아무래도 운신의 폭이 좁을 텐데.

노 : 음악감독은 거의 모든 작업을 감독하고 둘이 하기 때문에 딱히 다른 스탭들과 마찰이 생길 일은 없다. 오히려 음악할 때 난 항상 주인공이었기 때문에 무대 뒤에서 일하는 스탭들의 고충을 잘 몰랐는데 영화 하면서 많이 알게 됐다. 지금도 기억 나는 장면이 있다. <미인>의 경포대 바닷가 촬영에 따라갔을 땐데, 연출부 중 한 명이 하루 종일 모래만 다듬고 있는 거다. 화면에 발자국이 나오면 안 되니까 슛 들어갈 때마다 그 넓은 모래사장을 다 고르고 있더라. 쟤도 귀한 집 자식일 텐데 저걸 하루 종일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정말 스탭들한테 잘해 주고 사이좋게 지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 모래 다듬던 애하고는 지금도 연락하면서 잘 지낸다.

김 : 원래 대인관계 원만하기로 유명한 노영심 아닌가.

노 : 생각보다 성격 안 좋다.(웃음) 방송에서 사람들과 편하게 이야기하는 느낌을 줘서 그렇지 실제로 주변 사람을 잘 챙기거나 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김 : 오지랖이 넓은 건 사실 아닌가. 누구누구 경조사, 무슨무슨 행사의 게스트 명단을 보면 이름이 빠지지 않는다.

노 : 남들만큼 갈 뿐이다. 오히려 결혼식장, 경조사 가는 거 정말 싫어한다. 하지만 갔다 하면 기자들 눈에 띄니까 기사에 언급되는 것뿐이다.

김 : 지난 대선 때 정몽준 후보 지지 모임에 얼굴을 비춘 건?

노 : 그럴 땐 얼굴이 하얗게 질리도록 난감하다. 친한 선배가 사무실 오픈하는 데 꼭 오라길래 갔더니 그런 자리더라. 난 정치엔 관심 없다. 얼마 전 균동이 오빠가 총선 후보 경선에 나간다며 도와달라고 전화했을 때도 참 미안하지만 매몰차게 거절했다. 나랑 맞지 않는 일이니까. 근데, 떨어졌더라.

장 : 예전에 비해 눈에 띄는 활동이 적다. 은둔인가?

노 : 길 가다가 누굴 마주치면 요즘 뭐하세요, 왜 안 나오세요 물어보는 데 난 활동 중단한 적 없다. 지난해까지 10년째 계속 연 개인 피아노 연주회 '이야기 피아노'도 있지 않은가. 다만 예전의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충족감을 줄 만한 활동을 하는 사람이 이제는 아니라는 거다. 내가 활동하는 영역과 보는 사람들이 관심 갖는 영역이 어긋나 있어서 딱히 뭘 하며 산다고 증명하기엔 난감한 부분이 있다. 그런 점에서는 내가 영화 음악을 하고 있다는 건 좋은 답이 된다.

김 : 평범한 대학생이 방송을 타게 된 계기는 뭔가?

노 : 대학교 1학년 겨울 방학 때 한 라디오 방송에서 피아노 전공하는 학생이 나와서 연주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우연히 내가 참가하게 됐다. 거기서 이문세 씨를 만났다. 사인받으러 갔는데 피아노 반주가 필요하다고 해서 피아노 쳐드렸고, 그걸 계기로 피아노가 필요한 자리에 불려다니다 보니 방송도 하게 되고, 또 그러다 보니까 노래를 만들게 되고 뭐, 그렇게 된 거다.

장 : 가수, 연주자, 작곡가, 진행자에서 이젠 영화 음악까지. 참 다양한 영역을 넘나든다.

노 : 한동안 정체성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이제는 딱히 내가 뭘 하고자 하는 사람인지 기 쓰고 말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한 가지, 가수 노영심으로 부르는 건 쌍심지 켜고 항의하고 싶다. 왜냐면, '가수'라는 직함은 내가 연주 활동하는 걸 방해하는 때문이다. 일례로 처음 피아노 연주회를 시작할 때 내가 노래를 안 한단다고 사람들이 화를 내더라니까.

김 : 그래서 노래한 걸 후회한다는 인터뷰를 했나?

노 : 한번 그렇게 강력하게 얘기해보고 싶었던 거다. 차라리 은퇴라는 단어를 쓸까, 아니면 가명을 써볼까, 혼자 집에서 이런저런 궁리도 했었다. 가수로서 노래하는 건 내 삶이 아니다. 난 사실 노래하는 걸 너무 싫어한다.

김 : 그런 사람이 애당초 노래는 왜?

노 : 내가 음반 낼 때의 그 슬픈 얘기를 모르시는구나. 1집 앨범 내던 1992년 즈음만 해도 연주 앨범을 낸다는 건 대단한 모험이었다. 어렵사리 음반을 내주겠다는 분을 만났는데 노래를 한두 곡이라도 넣어줬음 해서 하나 넣은 게 ‘별걸 다 기억하는 남자’다. 2집 때는 이문세 씨가 ‘너 아무도 판 안 내주지? 내가 내줄게’ 하길래 오빠 망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또 한 곡 넣었다.(웃음) 그게 ‘그리움만 쌓이네’다. 결국 앨범을 내기 위한 방편에 불과했지만 그렇다고 대중들이 날 받아들이는 방식 자체를 부인할 생각은 없다. 내 노래가 어필했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테니까. 다만 한때의 경력이 앞으로 하는 일에까지 영향을 끼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과거 지향적으로 얽매이는 건 싫다.

장 : 이제는 그런 외부의 시선을 어느 정도 초월한 거 아닌가?

노 :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안 가지려고 해도 공연장을 대관할 때면 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정말 연주하고 싶은 홀을 빌릴 수 없을 때.

김 : 대중음악을 했다는 경력 때문에?

노 : 지난해 10주년 기념 연주회를 애초에 L모 아트센터에서 하려고 했는데 너무 혹독한 말까지 들어가면서 거부당했다. 그들이 내세우는 기준에서 봐도 나보다 더 자격 미달의 사람에겐 대관을 해줬는데 말이다. 그럴 땐 아예 음악하는 것 자체에 대한 회의가 든다. 그 때마다 또 피아노에 매달리는 거다.

장 : 하필 피아노라는 악기에 대해 애착을 갖게 된 이유는?

노 : 한국에서 피아노라는 게 워낙에 어렸을 때 엄마가 시켜서 하는 교육 아닌가. 나도 여섯살 때부터 엄마가 시켜서 피아노를 쳤고, 치기 싫다고 했다가 매 맞기도 하고, 결국 엄마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다. 그런데 대학교 들어가서 반항심이 생겼다. ‘어, 왜 꼭 피아노여야 하지?’. 게다가 난 집에 딸들뿐이라 남녀 공학을 가고 싶었는데 엄마가 이화여대를 가라 그러고, 또 피아노를 배운 선생님도 이대 출신이고 해서 결국 이대를 갔는데 뭐, 그런 계보들도 넌더리나고. 그래서 학교도 안 나가고 수업도 빠지고 그랬다. 그러다 졸업 연주 마치고 나오는데 뒤통수를 딱 치는 뭔가가 있었다. ‘아, 피아노를 쳐야 되는구나, 나는’ 하는 생각. 그때부터 다시 피아노를 쳤던 것 같다. 그렇게 시간이 좀 더 흐르자, 이번엔 단순히 피아노를 치는 게 아니라 나만의 피아노를 쳐야 한다는 의식이 생기더라. 세상에 널린 게 피아논데 내가 왜 피아노를 쳐야 하는가, 어떤 피아노로 사람들에게 어필해야 하는가, 하는 고민. 그 결과 시작한 연주회가 지난해 10년이 됐다. 내가 피아노 치면서 겪은 일들, 정말 간절하고 눈물 어린 것 많다.

김 : 예를 들면 어떤 일?

노 : 그게 어떤 특정한 사건이라기보다는 피아노와 나누는 교감, 뭐, 그런 것 있지 않나?

김 : 어릴 때 엄마가 피아노 학원 가라는 데도 안 가고 뺀질대다가 바이엘 3권을 채 끝내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교감이 뭔지 잘 모른다. 설명해 달라.

노 : 내가 제일 좋아하는 피아노가 스타인웨이다. 너무 비싸서 아직 갖지 못했다. 간혹 스타인웨이를 갖춘 홀에서 연주할 기회가 생기면 그 피아노가 내 거라는 생각 때문에 아침에 진짜 일찍 일어난다. 처음 가는 공연장이라도 귀신처럼 입구를 찾아낸다. 불이 다 꺼진 상태에서도 혼자 피아노를 칠 때가 있는데,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느끼는 그 감정. 세상에 나와 피아노, 단 둘만 있는 그 느낌은 정말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가끔 영화를 보면서도 그런 것 느끼지 않나. 어둠 속에 영화와 나, 둘 만 있다는 안도감. 그럴 땐 정말 내가 피아노를 사랑하는구나 하는 걸 느끼게 된다. 내가 연주회 프로그램에 이런 글을 쓴 적 있다. ‘피아노는 저의 가장 오랜 친구입니다. 한번도 내 마음을 외면한 적이 없었죠. 전 참 행운아입니다.’라고. 정말 그렇다. 내 마음이 슬프면 슬픈 피아노가 나오고 기쁠 땐 기쁜 피아노가 나온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나에게 그렇게까진 못해준다.

장 : 부군인 한지승 감독조차도?

노 : 그 범주까지는 들어올 수 없을 거다. 그 이외의 것들로 교감하겠지. 비교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피아노는 그냥 나 자체이니까.

장 : 그럼 남편과 나누는 교감은 뭔가?

노 : 각자 열심히 일하는 에너지가 서로에게 상호 작용을 해 준다. 그런 기운은 서로 강요하지 않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스며 드는 거다. 때로는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그 사람에게 스며 들 만한 무언가를 내놓는다는 게 기뻐서 열심히 한 것도 있다. 학교 다닐 때 공부한다고 같이 모였다가 괜히 공부도 안 하고 수다만 떨다가 헤어지는 경우 많지 않나. 요즘 그런 생각 자주 하게 된다. 내 공부도 중요하지만 내 친구 공부를 도와주고 그 친구가 공부를 잘할 환경을 같이 만들어주는 것도 중요하단 생각. 오빠도 최소한 내가 일하는 데 옆에서 드러누워 자거나 하진 않는다. 원래 공부 잘되는 도서관은 잘될 만한 분위기가 있는 법이다.(웃음) 어차피 결혼 생활이란 게 서로 뽑아 먹고 뽑아 먹히고 사는 거다. 영화일 하면서 모르는 게 있으면 멀리 갈 필요 없이 바로 옆에 있는 사람한테 물어보니 편했다. 그렇게 뽑아 먹는 게 내 보람이다.(웃음) 만일 남편이 목수였다면 목수로서 뽑아 먹을 걸 뽑아 먹었겠지. 뭐, 문 고쳐라, 니가 만든 침대에서 자고 싶다 등등.(웃음)

김 : 서로 뽑아 먹을 게 많다는 건 행복이다.

노 : 맞다. 서로 노력해야 하니까. 어차피 일상이란 건 쉽게 바닥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그 드러난 바닥을 보고 있으면 얼마나 슬프겠나. 계속 노력해야 한다.

장 : 서로의 작업에 대해 평가도 해주나?

노 : 어떨 땐 너무 혹독하게 평가해준다. 하지만 단순히 자기 취향에 근거하지 않고 절대적 평가 기준을 갖고 평가하기 때문에 많이 도움이 된다.

장 : 반대로 한지승 감독 영화를 평가한다면?

노 : 너무 착한 영화다. 그게 장점이자 단점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옛날에는 지승 씨 영화를 유치한 영화쯤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사람 영화에는 관객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 그런 게 있다는 걸 알게됐다. <그녀를 믿지 마세요>를 보면서 그런 공부를 많이 했다. 난 관객에 대한 헌신이 부족하다. 아직은 내 취향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그 점에서 고맙게 생각한다.

김 : 너무 이상적인 결혼 생활이라 독자들이 샘내겠다.

노 : 오빠도 가끔 "사람들이 우리가 이렇게 잘살고 있다는 걸 알까?" 하고 말한다.(웃음)

김 : 영화감독과 결혼하기 전에도 영화를 많이 봤나?

노 : 많이 보지는 않지만 영화 보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 관객이다. 영화를 보고 나면 내가 영화관을 나와서 어떤 행동을 해야 그 영화의 여운을 남길까 생각하게 된다. 영화에 와인이 나오면 와인을 꼭 마시러 가는 식이다. 난 착한 관객이다.(웃음)

김 : 평소 이미지로 미루어 보건대 영화 보면서 많이 울 것 같다

노 : 자주 운다기보다는 안 울어도 되는 부분에 울게 되는 경우가 많다.(웃음)

김 : 내 인생의 영화를 꼽으라면?

노 : <정복자 펠레>.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이 눈길을 걸어갈 때 흘러나오는 청명하고 푸릇푸릇한 차가운 피아노. 그게 가슴속에 확 들어왔다..

김 : 아까 음악가로서 꿈이 있다고 그랬다. 그게 뭔가?

노 : 작년에 10주년 연주회 끝나고 마지막에 내가 그랬다. 전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어요. 그랬더니 사람들이 다 웃더라. 마치 어렸을 때 전 대통령이 되고 싶어요, 과학자가 되고 싶어요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느꼈나 보다. 하지만 난 진심이었다. 루빈스타인이나 그런 저명한 피아니스트를 말하는 게 아니다. 어디 오지에 가서라도 내 음악으로 내 마음을 전달할 수 있다면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의 꿈을 이룬다고 본다.
그래서 오는 6월에 여는 '노영심의 이야기 피아노' 11주년 음악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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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바이칼 호수 근처 오지에 가서 할 계획이다. ‘관객을 찾아서’라는 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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셉으로 준비 과정과 연주 현장 일체를 다큐멘터리처럼 기록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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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나 마흐말바프의 영화 같은 느낌의 작품이 나올지도 모르겠다.(웃음)

장 : 혹시 한지승 감독이 찍나?

노 : 한지승 감독이 될지, <아홉살 인생> 만든 윤인호 감독이 될지, 또 다른 누가 될지는 아직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한지승 감독한테 짐이 되고 싶지는 않다. 이건 내 작업인데 남편이라고 싼 값에 부려먹으면 안 되니까.(웃음)

장 : 뽑아 먹을 수 있을 때 맘껏 뽑아 먹는다면서?

노 : 평생 뽑아 먹을 테니 이번엔 안 뽑아 먹어도 된다.(웃음) 기회야 앞으로 얼마든지 있다.

김 : 하필 러시아인가? 한국에도 오지는 많다.

노 : 안 그래도 원래는 강원도 평창에 있는 폐교에서 하려고 했다. 근데 이것과 별도로 바이칼 호수가 주는 정서를 바탕으로 음반을 하나 낼 생각으로 답사를 갔다가 우연히 근처 마을의 학교에 들르게 된 거다. 일행 중 한 명이 여기서 음악회를 하면 어떻겠냐는 얘기를 하는 순간 마음을 굳힌 거다. 말이 안 통하는 사람들과 단지 음악만으로 소통한다는 것, 그게 이번 연주의 핵심이다.

김 : 지금까지 노영심은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사람일 거란 생각을 했다. 그런데 오늘 얘기를 나눠보니 그렇지 않다.

노 : 나도 그 말이 꼭 하고 싶었다. 나에게 음악을 의뢰할 때 나라는 인간, 나의 음악을 정확히 알고 의뢰하는 사람이 많았으면 한다. 예전에 ‘희망 사항’ 같은 분위기로만 기억하지 않길 바란다. 내가 생각보다 어두운 사람이란 걸 알아주는 사람은 내 가슴을 뜨겁게 한다. 내 이면을 보아 주는 사람은 나를 무한한 가능성 속에서 헤엄치게 만들어주니까. <아홉살 인생>의 윤감독님을 처음 만났을 때도 노영심 씨가 참 어두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더라. 왠지 안도감이 생겼다. 물론 그렇다고 음악이 어둡게 나오는 건 아니지만.

장 : 그 어두움의 본질은 뭔가?

노 : 외로움이다. 친구 같은 외로움. 고통스러운 감정으로서의 외로움이 아니라 늘 내 곁에 있어서 행복한 감정으로서 외로움. 그걸 알아주는 사람은 나에게서 더 많은 걸 끌어낼 수 있을거다. 그래서 그런지 <아홉살 인생>은 정말 실타래 풀리듯이 술술 음악이 나왔다. 오죽하면 OST 음반을 만들면서 직접 노래도 하나 불러 넣었겠나.

김 : 노래 안 한다더니?

노 : 다른 사람 쓰려고 했는데 돈이 없어서 그냥 내가 불렀다.(웃음) 굳이 변명하자면 이 노래는 예전의 그런 노래와는 다르다. 우림이가 커서 어떤 생각을 할까를 생각하다가 그냥 자연스럽게 그런 음악이 풀려나온 거다. 나중에 한지승 씨가 해달라고 할 때 이 영화보다 더 잘해줘야 할 텐데, 하는 걱정이 들 정도다.(웃음)

장 : 한지승 감독이 연출은 오래 쉬었다. 다음 작품 계획은 있던가?

노 : 사실 내 남편이 굶어 죽어도 감독으로 굶어 죽길 원하지 제작자로 굶어 죽길 원하진 않는다. 난 창작하는 사람하고 살고 싶다. 다행히 제작 다시 안 한다고 하더라. 난 진작에 알아봤다.(웃음)

김 : 연출자와 스탭으로 만나면 싸울 일이 많을 텐데.

노 : 아마 많이 싸울거다. 제작자와 스탭으로 만난 <그녀를 믿지 마세요>할 때도 미치는 줄 알았다. 서로 코드가 안 맞으니까.

장 : <아홉살 인생> 시사회 다니느라 바쁘다고 들었다.

노 : 홍보팀에서 나와 감독님이 홍보를 많이 해달라고 부탁했다. 오늘도 시사회에 간다. 지난 번 VIP 시사회때는 내가 아는 사람들을 여럿 초대해서 보여 줬다.

김 : 누구?

노 : 뭐, 이문세 씨, 윤석화 씨 등등… 나름대로 참 괜찮은 삶을 사람들이 내가 정한 초대 기준이다. 그러다 보니 백기완 선생님도 초대하게 되더라.(웃음)

김 : 백기완 선생님과도 친분이? 거 봐라. 발이 넓다니까

노 : 친분은 무슨. 한 번 뵈었을 뿐이다.

김 : 더구나 한 번 뵙고 초대라니. 그래서 대인관계가 좋다고 하는 거다.

노 : 원래 이런 일로 전화해서 와달라고 잘 못하는 성격인데 이번에는 ‘어쩌면 당신을 조금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면서 전화를 돌렸다. 다행히 영화를 본 사람들이 다들 좋은 선물 받은 것 같다고 그런다. 조영남 씨는 나보고 니가 지난 10년 동안 한 일 중에 제일 잘한 일 같다고 그러던데?

*부군은 영화를 만들고 언니는 그 음악을 만들고...
참 재미있고 행복하게 사는분들 같아 무척 부러운 생각이 드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