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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days

난 매정한 누나다

by 따즈 2006. 5. 22.
주말에 군복무 중인 동생이 다녀갔다. 백만년만에 와서 반가울리 만무하고, 모하러 여기까지 왔나 싶었다. 난 매정한 누나다. 훈련 들어가서 아무것도 못해서 답답했다고 신나게 놀고 가겠다고 하길래 원래 군인휴가라는 것이 대체로 소비와 유흥의 문화인지라 그러려니 했다. 휴가 나와서 도서관 간다 그럼 웃기지.  동생은 유흥과 환락의 밤세계로 여행을 떠났다. 그래봤자 칵테일 한두잔에 친구들과 수다떨고 새벽에 들어오지만.
간만에 달게 자고 있는데 새벽에 엄마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서 일어났다. 나는 잠귀가 어두운 편이라 한번 누우면 왠만한 소리에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 내가 깰 정도면 엄마가 스무번은 넘게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방에 들어가서 자라는 말을 계속 하는 엄마 목소리에 동생이 거실바닥에서 자나 보다 했다. 제 방에서 자면 큰일나는 것이 모든 엄마의 마음이니. 벌떡 일어나 질질 끌어서라도 방으로 옮겨야지 하고 방밖으로 나가니 엄마는 거실이 아니라 화장실 앞에서 동생한테 일어나라고 하고 계셨다. 이 녀석이 간밤에 술을 마시고 화장실에서 변기를 붙들고 잠들어 있었나보다. 우리 아버지는 전혀 술을 마시지 않는다. 술독에 빠진 다음 날에 대한 정보가 전무한 엄마는 동생의 이 기행에 몹시 놀라셨다. 동생이 차가운 곳에서 자니 혹시라도 안좋을까봐 계속 나오라고 하고  들락날락하는 것보다야 그게 편하니 동생은 사정상 나올 수 없었던 것이다. 자다 일어난 나는 몹시 짜증나는 목소리로 일어나라고 했고
내 목소리엔 퍼뜩 깨는 내동생은 정신을 차리고서 그냥 화장실에 있겠다는 의사를 표명하여 엄마와는 화장실에 덮을 것을 주는 것으로 합의를 했다.
아침이 오고 우리집 표준 아침식사 시간인 7시에 맞춰 술에 빠진 내동생도 일어났다. 술국이라는 것 자체가 없는 우리집에서 술마셨다고 담날 아침을 봐주는 것은 아니니까. 아침먹고 슬렁슬렁 책을 넘기고 있는데 내 방으로 동생이 들어왔다.

누나, 나 헤어진지 한달 됐다.
그래? 내가 뭐라고 해주면 좋겠니?

난 매정하고 싸늘한 누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