갖고 있던 파랑 라미 만년필을 세척하고 F촉에서 M촉으로 교환했다. 닙을 빼는데 어찌나 고생을 했던지 펜을 망가뜨리려나 했다. 디비디 배선도 척척, 고장난 문짝도 척척 하다가 간혹 이런 거에 애먹을 때가 정말 싫더라. 남들한테 쉽다는 것 중엔 내게 어려운 게 많더라.
M촉으로 갈고 보니 술술 잘도 굴러가는 게 써짐이 너무 좋다. 파랑 라미를 깨끗이 해주고 나니, 왠지 검정 라미가 서글퍼 하는 것 같아 검정 라미도 지금은 목욕재계 중. 몸을 정갈히 하고 나면 F촉으로 갈아줄까 생각중이다.
생각해보면 이건 괜한 삽질이다. M촉인 검정 라미에는 몽블랑 보르도가 들어있고 F촉인 파랑 라미에는 큉크 블랙이 들어있다. M촉으로 블랙을 쓰고 싶어서 닙 교환을 했는데 사실, 그냥 카트리지만 바꿔끼면 될 일을 괜히 라미 성형수술까지 시키고 있는 셈.
검정 라미엔 빨강을, 파랑 라미엔 검정을, 하양 라미엔 청록색을, 이라고 생각했더라도 잉크색 좀 바뀌면 어떻다고. 하지만 역시 맘에 드는 그릇에 맘에 드는 것을 담고 싶은 건 어쩔 수 없나보다. 덕분에 가방을, 침대를, 책상을, 이래저래 굴러다니느라 고생한 라미들이 조금은 청결해졌다. 뭐, 하양이는 원래 깨끗하니 목욕재계는 안해도 돼. 그나저나 맘에 드는 청록이는 어디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