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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또 다른 은교 이야기, 백의 그림자

by 따즈 2012. 6. 24.

 

 

처음 몇 줄을 읽으며 굉장한 흡입력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 이거 내 타입인데 라고도.

 

마침 장소도 좋았던 것 같다. 용산으로 출근하는 길에, 용산에서 퇴근하는 길에, 야금야금 읽었다. 전자상가가 배경으로 등장했을 때 흠칫 했으나 이내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 수 있었고, 내가 근무하는 장소가 전자상가는 아니지만, 가깝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렇게 친밀감을 느낄 수 있구나 놀랬다. 전자상가가 철거되고 공원이 되는 이야기에서는 문득 외할아버지 생각이 났다. 시골서 농사를 지으시던 할아버지는 내가 갓난쟁이였을 때 오이가 잘 팔리나 시찰하러 용산을 오신 적이 있다고 했다. 전자상가 전에 용산은 큰 창과물장터라고 했다. 그때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면 좋았을텐데. 오랜기간 치매를 앓다 돌아가신 할아버지 생각에 조금 뭉클했을 때가 원효대교를 막 들어서는 참이었다. 한강을 따라 예쁘게 피었던 벚꽃이 이제 녹색잎을 틔우며 예쁜 꽃잎을 흩날리고 있었다. 역시 배움은 체험이다. 누가 벚꽃은 지는 것도 더럽다고 내게 가르쳤는지. 무궁화는 지는 것도 고결하다고 가르쳤는지. 왜 식물에 그런 투영을 했는지. 여간 마음 아픈 일들 투성이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이는 은교와 무재. 은교는 요즘 한창 회자되고 있는 그 은교는 아니지만 이름이 같다니, 은교라는 이름에 어떤 향기가 있나.

 

은교와 무재는 가동, 나동, 다동 줄기차게 이어져 있는 전자상가 귀퉁이에서 살고 있다. 난 이런 이야기를 좋아한다. 사회변화나 불공평한 경제의 틈에 서있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진짜 이야기. 변한다고 투정하지 않고, 불공평하다고 투쟁하지 않고, 조용조용 하루를 살아가는 이야기. 실제로 그러니까.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소중하게 보이게 하는 소설도 좋다. 오랜만에 나와 호흡이 같으나 두렵지는 않은, 하지만 마음은 아련한 소설을 만나서 좋았다.


이제 용산으로 출근하지 않지만, 원효대교를 건너 여의도한강공원에서 밤바람 맞으며 마시던 맥주는 그리워질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