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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내 기억 속의 소설 일부

by 따즈 2008. 6. 10.
인생이 바뀔만큼 대단한 감동을 받은 책이 없다고는 했지만, 사실 알게 모르게 지금의 나에게는 그동안 읽은 책의 파편들이 이곳저곳에 박혀 있다고 생각한다. 그 파편들이 심장을 찌를만큼 위험하여 아이언맨처럼 원자로를 가슴에 달아야하진 않지만, 그 파편들이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는 일부분임에는 틀림없다. 그 중 강한 인상으로 남은 파편들은 대부분 초등학교 때 읽은 책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데미안'을 읽기 시작하면서 내 독서는 갑자기 프로이드다 뭐다 하는 심리학서들로 옮겨가서 중학교 때 읽은 소설 중 기억에 남는 것은 앤 시리즈이고 고등학교 때는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 정도다. 고등학교 때도 시험과는 상관없는 선생님의 추천도서나 관심가는 도서도 읽었는데도 기억에 그닥 남아있지 않다. 초등학교 때의 독서기억이 강한 것은 진심으로 즐기면서 읽은 시기가 그때여서 그 때 이후로 재독을 하지 않았음에도 또렸이 기억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간만에 그 중 몇가지 기억에 남는 파편들을 적어보자면,
(한참 쓰던 글 날리고 다시 쓰자니 못해먹겠지만)

[북극의 이리소녀] 초등학교 때 읽었던 책인데 읽으면서 굉장히 두근두근 했던 기억이 난다. 북극에서 아빠와 함께 자연생활을 하던 주인공 소녀는 당국의 아동보호 정책에 따라 강제로 아빠와 떨어져 도시에서 학교에 다니게 된다. 새로운 도시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주인공 소녀는 북극을 횡단!(과장인가!)하게 되는데 이때, 이리무리의 도움을 받게 된다. 주인공 소녀는 이리무리와 함께 하기 위해 그들의 언어(행동)로 대화를 시도하는데 이리 두목에게 복종한다는 의미로 꼬리 대신 손을 내린다던지 하는 행동들이 구체적으로 나와 흥미로웠다. 물론 나는 눈싸움에서 개 따위에겐 다 이겨주겠어!라는 이상한 모토를 갖게 되었지만. 자연을 사람이 얼마나 헤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지 전달하는 소설이다

[동굴의 여왕] 인디아나 존스의 냄새가 나는 소설인데 2000년 묵은 가족의 원수(?)를 갚으러 떠나 천년만년 젊고 아름답게 사는 동굴의 여왕을 만나고, 그 동굴의 여왕은 되는 일이 없게도 늙어 뼛가루가 된다는 이야기? 흥미진진했지만 묘사가 읽어도 구체적으로 상상이 되지는 않아서 또렷이 기억에 남는 장면이 없다. 하지만 천년만년 젊게 사는 그 여왕의 카리스마가 정말 인상적이었다. 저주도 인상적이었는데 정수리를 세 손가락으로 짚으면 그곳부터 몸이 썩어가며 죽게 된다. 지금까지 내가 읽거나 들어온 저주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저주랄까.

[허풍선이 남작의 모험] 허풍선이 남작의 이야기 중에서도 가장 맘에 드는 것은 달나라의 이야기다. 달나라 사람들은 몸을 자유자재로 분리할 수 있어서 머리는 미용실에 맡기고 몸은 식사를 한다. (그들은 식사를 배로 한다.) 이 얼마나 합리적인가. 상상력 한가득이라 남작이 좀 재수는 없어도 즐겁게 읽을 수 있다.

[해저2만리] 아마도 해저2만리일거라 생각되는데, 자신은 없다. 기억 속엔 네모 함장이나 노틸러스호에 대한 것이 전혀 없으므로. 인상적이었던 것은 해저도시 사람들의 대화법. 그들은 텔레파시로 대화하며 자신의 생각이나 기억을 스크린에 비출 수도 있다. 그것을 보면서 우리 옛이야기에서 며느리를 구박하다가 가족들 아무도 없을 때 며느리한테 구박받은 시어머니가 가족들에게 말을 해도 믿어주지 않자 마음 속이 버선발이 아니니 뒤집어보여줄 수 없다며 한탄하던 대목을 떠올렸었다. 해저도시 사람이라면 편리했을텐데.

[데미안] 소설 속에서 데미안이 자신의 내부로 시선이 향해 있어서 얼굴에 파리가 기어다녀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장면이 있다. 나도 그렇게 내 자신을 바라보고 싶었지만 안되더라. 지금도 안될 듯. 하지만 딴 생각을 하면 그 지경이 될 확률 100%다.

이렇게 적다보니 간만에 이것저것 생각나 즐겁다. 그것을 읽을 때 어떤 느낌이고 무엇을 떠올렸는지도 생각난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그때의 내가 조금은 보이는 느낌.
지금도 차곡차곡 독서를 하면 또 몇년 후에 이런 생각을 하면 나를 되돌아 볼 수 있겠구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