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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앤 패디먼_세렌디피티 수집광

by 따즈 2008. 10. 27.
세렌디피티 수집광 - 10점
앤 패디먼 지음, 김예리나 옮김/행복한상상

우리 부모님은 몇 년 전 가파른 언덕 꼭대기에 사셨다. 아버지는 서재에 쌍안경을 두고 보물선을 찾아 지평선을 훑는 해적선장처럼 주기적으로 우편함을 검사하셨다. 집배원이 다녀갔는지 알려 주는 우편함 깃발의 위치를 체크하시는 거였다. 마침내 우편물이 도착하면 아버지는 주차로를 터벅터벅 걸어 내려가셔서 특대형의 검정색 금속 우편함을 여셨다. 남편에게 특대형 바지를 사주는 일부 아내들의 융통성을 발휘해 어미니께서 사주신 우편함이었다.

그 속에는 그날의 할당량(산더미 같은 편지 말고도 모서리가 뾰족한 내용물 때문에 구멍이 나서 아버지 표현에 따르면 '쥐똥'이 샐 때도 있는 비평 서적이 약 10킬로그램 정도 있었다)이 언제나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끈기 있는 분이셨고 짧은 저항 끝에 우편물은 항복을 하고 아버지 품에 꼭 안긴 채 언덕 위로 운반돼 거대한 책상 위에 던져졌다. 그 순간 전까지 아버지의 하루는 정말로 시작된 게 아니었다.
                                                                                                     -우편물

이 편지를 쓰기 5일 전 램은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식칼을 가슴에 꽂고 있는 어머니와 포크로 머리가 찔린 아버지, 그리고 아직까지 피 묻은 살인 도구를 쥐고 있는 누이를 발견했다. 메리는 그녀 밑에 있던 어린 양재사 견습생에게 격분해 칼을 집어 들고 주방에서 그 아이를 쫓아 다녔다. 그녀의 어머니가 제발 그만하라고 애걸해 소녀는 도망갔고, 메리는 어머니를 찌른 것이다. 다음날 모인 배심원들은 즉각 정신착란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 편지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램이 '소중하고 소중한 가엾은 누이'라는 형용사를 남발했으며 살해당한 어머니에 대해서는 말을 아겼다는 사실을 누치 채지 않을 수 없다. 모친살해에서 피해자보다 가해자에게 더 큰 동정심이 쏟아진 경우는 지금까지 없었다.
                                                                                                              
-온순하지 않은 램

소년은 자라서 잠을 너무 많이 자고 마감일을 어기며 나쁜 소식이 들어 있을까봐 무서워서 편지봉투를 열지도 못하는 어른이 됐다.
                                                                                                                  -도망자 콜리지


서재 결혼시키기의 저자, 앤 패디먼의 글을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머리말에서부터 '수상록'이라는 단어를 끄집어내, 수필과의 차이점에 대해 고민하게 했던 것과 달리(요즘 문학장르의 무지함에 골머리를 앓는 중) 제1장이 끝나기도 전에 앤 패디먼에게 홀딱 반해버렸고, 그를 내가 좋아하는 작가군에 넣기로 했다.
그녀는 매력적인 독서가이자 작가임에 틀림이 없다. 그녀는 내 게으른 독서욕구를 부추기는데 부족함이 없는 글솜씨로 나를 자극시킨다. 요즘 나의 독서 목록을 보며 혀를 끌끌 찼는데 어찌나 편협하던지. 이 책에 실린 열두 편의 수필은 내가 쉽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주제로, 그녀의 생각과 더불어 전문적인 지식을 제공한다. 책 마지막 장의 참고문헌에 줄줄 쓰인 도서목록을 보면,  그녀가 한가지 주제에 대해 얼마나 심도 깊게 공부하고 고민하며 쓴 글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에서 소개해준 콜리지와 램에 대해 더욱 알고 싶어졌다. 그.러.나. 그들과 친해지기 위해선 언어의 장벽부터 허물어야 한다; 좀 슬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