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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days

북해도의 겨울

by 따즈 2007. 5. 10.

4계절 중 가장 싫어하는 계절을 손꼽으라면 당연 겨울이었다.
돌떡을 못얻어먹어서인지, 워낙 몸이 부실해서였는지, 유치원이 넘도록 엄마아빠 등에 업혀다닌 덕인지는 알 수 없지만 걸림돌 없는 탄탄한 평지에서도 난 곧잘 땅과 맞절한다. 겨울에 눈 위를 10분이라도 걷고 나면 온몸이 뻑적지근하게 아프다. 멀쩡한 평지 위에서도 넘어지니, 눈 위는 오죽할까 싶어 긴장에 긴장을 하느라 걸음은 늦어지고 몸은 굳어진다. 동절기 미끄러지는 스포츠는 몽땅 할 수 없다. 하얗게 내린 눈 위에 사람들 발자국이며, 자동차바퀴자국으로 더러운 구정물처럼 변하는 것도 싫고 더불어 그 물에 신발이 젖는 것도 싫다. 추위는 엄청타서 옷도 3,4벌 이상은 껴입어도 어느새 똑똑 떨어져 변온동물처럼 손발의 체온은 바깥공기와 비슷한 수준이 된다. 겨울에 대한 좋은 기억은 머리 속을 헤집어봐도 생각나지 않는다. 기억의 저편 어딘가에 좋은 추억이 있다해도 겨울을 싫어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해 생각해낼 수 없다.

그런 내가 한 겨울을 눈의 나라 삿뽀로에서 보냈다.
5년만의 엘리뇨를 맞이한 덕에 예년보다 따뜻했다는 북해도여서 겨울이 만만해졌는지도 모른다. 무거운 노트북에, 배낭까지 들쳐매고 눈보라 속을 뚫고 도착했던 첫날의 거억도. 폭신폭신, 아삭아삭한 눈길을 씩씩하게 걸어다닌 기억도, 눈을 피해 걸어다니는 쇼핑상가 타누키코지도. 삿뽀로역까지 걸어가는 길에 나눠주는 홍보용 티슈를 열심히 받아 모으던 것도. 끊없는 눈밭에 눈부셔서 매번 눈물흘리던 일도. 내겐 이제 너무 좋은 추억.

난 이제 겨울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