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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2006.12-2007.11 Japan

53분 28초의 대화

by 따즈 2007. 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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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전화가 싫다. 초등학교, 중학교 전학을 다니면서도 멀리 있는 친구와 전화로 수다를 떨어본 적도 없으며,  10시 넘어 걸려오는 친구의 전화는 가차 없이 끊어준다. 핸드폰은 하루에 두 번 확인하면 많이 확인하는 셈이다.

얼굴 없이 들리는 목소리가 싫다. 누군가의 습관, 이야기는 잘 기억하지만 얼굴이나 이름은 곧잘 잊는다. 때때로 수많은 얼굴 없는 목소리가 내게 말을 건다. 내 몸 속엔 주인을 잃은 소리들이 부유하고 있다.

 일본에 있으면서 그간 한둘의 친구가 생겼고, 그것은 더불어 내 몸 속을 부유하는 수많은 목소리 중에 일어도 일부 추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에 오기 전부터 메일 친구를 맺은 요코에게 출산선물을 보냈는데 감사의 뜻을 직접 전하고 싶다며 멀리 있으니 전화로 연락을 했다. 2년 동안 편지를 주고받았지만 전화를 하는 것은 처음. 일본인과 전화 통화는 일어가 부족한 나로서는 항상 긴장되는 일이기도 하지만 가장 부담되는 부분은 언어가 아니라 끊는 타이밍이다. 서로 만나서 수다를 떨 때도 당최 언제 집에 가야하나 싶은 것처럼, 내가 먼저 전화를 끊자 말할 수 없는 것은 비극이다. 처음 목소리를 직접 듣는 것이니 알고 지낸 것은 2년이나 괜히 새삼스레 처음 뵙겠다고 쑥스럽게 시작한 전화통화는 길고 길어져 53분 28초간이나 지속되었다. 전화는 싫지만 그것을 감수할 만큼 다른 땅에 좋은 친구를 두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