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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온다리쿠-호텔 정원에서 생긴 일

by 따즈 2008. 6. 18.

호텔 정원에서 생긴 일 - 10점
온다 리쿠 지음, 오근영 옮김/노블마인


 사람은 남들에게 보임으로써 예뻐진다. 여잔만이 아니다. 남자도 그렇다. 사랑은 타인의 시선에 의해 제2의 자신, 밖에서 본 자신이라는 존재를 완성해가는 것이다.
 사람은 보이는 것, 연기하는 것에서 쾌감을 느낀다. 소설, 드라마, 게임. 전에 없을 정도로 허구가 소비되고 있는 이 시대, 자신을 허구 안의 등장인물로 간주하는 것이 큰 오락 가운데 하나가 된 것이다. 일ㄹ찍이 그것은 은밀한 재미였다. 영화나 소설 속의 주인공에게 감정이입함으로써 사람들은 타인의 인생을 상상했다. 그러나 지금 사람들은 당당하게 타인이 되기를 원한다. 드라마 속의 주인공이 예전의 대스타에서 자신과 빕슷한 타입의 사람으로 바뀌면서부터 자기도 히로인이 될 수 있다고 착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무대인 도회지를 보라. 아오야마, 긴자, 롯폰기. 젊은 여자를 비롯하여 '보이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자꾸 거리는 투명해지고 있다. 상점 벽은 유리가 되고 이윽고 그것조차 걷어낸 사람들은 길가에 앉아 길을 가는 사람들 앞에서 대화를 나눈다. 거리 자체가 무대가 된 것이다.
 반대로 배우가 모이는 곳에 관객도 모인다. '보는' 것만이 목적이고, 대상에 몰입하여 자신의 존재를 지우고 싶은 사람이 모이는 곳은 자꾸 불투명해진다. 벽을 만들고, 창을 막고 안을 개인공간으로 만든다. 풍속업소나 이른바 마니아들이 모이는 가부키초나 아키하바라가 바로 그 상징이다. 그러나 이것은 불특정다수의 완전한 타인이 많이 존재하는 도시지역으로 한정된다. '보는' 측도 '보이는' 측도 전혀 낯선 타인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봄으로써 소비하는 존재임과 동시에 보임으로써 소비되는 존재이기도 하다. 보는 자와 보이는 자는 언제 어느 때 뒤바꿔도 이상하지 않다. 밖에서 감상하는 눈과 앞에서 감상당하는 눈을 가진 현대인은 그 두가지 눈으로 항상 분열된 상태가 되고 있는 것이다.


한 작가의 여러 책을 읽다보면 그 작가의 일관된 생각이나 감상, 추억 등이 보일 때가 있는데, 그 때가 바로 진심으로 그 작가를 좋아하게 되는 시점이 되는 것 같다. 그 때엔 책 안의 이야기에 진짜 숨이 불어넣어진 듯한 느낌이 든다. 온다리쿠의 책도 여럿 읽다 보니, 몇가지 나와 통일된 시선이 느껴진다.

『호텔 정원에서 생긴 일』은 『삼월은 붉은 구렁을』보다 훨씬 읽기 힘들었다. 독특한 진행방식이 호기심을 자극하고 그만큼 뇌를 자극해 읽는 동안 살짝 두통을 동반했다. 시간이 없어 단시간에 독파하다보니 더욱 그랬던 듯. 천천히 읽었으면 즐거웠을 책을 무리하게 꾸겨넣느라 힘들었는지도. 하지만 이 구성은 정말 재미있다. 읽는 재미가 쏠쏠한 것은 틀림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