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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온다리쿠_소설이외(에세이) 중

by 따즈 2008. 10. 7.

우울한 음악 

1936년 부다페스트. ‘Gloomy Sunday'라는, 연인을 잃은 남자의 독백을 노래한 유행가를 듣고 18명이나 연달아 자살했다. 일본에서도 예전에 아이돌 가수의 자살에 잇달아 몇 명의 아이들이 자살했었지만, 시대의 공기도 전달되어 우울이라는 것은 전염되는 모양. 과연 자살하고 싶어지지 않는 나로서도 듣고 있는 동안 세상이 싫어지고 마는 음악이 몇 곡 존재한다. 그 중 하나는 뭐니 뭐니 해도 에릭사티의 ‘짐노페디’이다. 그 오프닝을 듣는 것 만으로 ‘우아- 그만둬!’라고 외치고 싶어지는 것은 나뿐인가? 이 곡을 듣고 있노라면 어릴 적에 저지른 실패나 쇼크를 받은 일들이 기억의 밑바닥을 억지로 열고 방긋방긋 웃어가며 현재의 나를 향해 쩍쩍 긴 복도를 걸어오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런 기억은 언뜻 보기에는 상냥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무엇보다 무서운 것임에 틀림없다. 나는 계속 숨을 죽이고 그것이 가까워지는 것을 두려워하며 복도의 이쪽편에서 서 있다. 이런, 도망치고 싶어도 도망칠 수 없는 우울을 이 곡에서 느끼고 만다. 이런 음악은 잔뜩 있다. 텔레비전 시대극 ‘오오카에치젠’의 테마곡이 흐르면 언제나 생각했다. ( 생각나지 않습니까? 아-아-아아-하고 남자 코러스가 계속 되고 가사는 없는 그 곡입니다.) 그 음악을 들으면, '열심히 해봤자, 인생은 보상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라는 기분이 되어서, 그 후에 자신의 방에 돌아와도 숙제를 시작하는 것이 몹시도 귀찮아져 버렸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이렇게 되돌아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코러스가 있는 것에 약한 것 같다. ‘정글대제’의 오프닝의 코러스를 들으면 우울해진다. 대단히 좋은 곡이라고 생각하는데도 마음은 점점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탄 것처럼 침몰하고 말아 들을 수 없다. 역시 여성코러스의 테마송이라면 NHK소년드라마시리즈‘속. 타임트레블러’에도 막연히 공포감을 느낀다.(이걸 쓰면서도 그런 곡들이 머리 속에 흘러서 나는 지금 점점 우울해지고 있다)클래식에서 무서운 것은 뭐냐고 한다면 바로크 계열 음악이다. 뭐라고 해도 우울한 것은 비발디의 ‘사계’. ‘봄’은 전체가 우울덩어리여서 백화점 안에 이 곡이 흐르면 순식간에 구매욕구가 사라져 집에 돌아오고 말 정도다. ‘겨울’도 무섭다. 그 바이올린 테마는 일본어로 가사가 붙어있어 ‘모두의 노래’에서 종종 방송하곤 한다. ‘어디까지나 하얀 이 길을 혼자서~’라는 가사로 ,정서불안정이었던 나는 매번 이곡을 들으면 권태로움을 느낀다. 모차르트나 바하도 두렵다.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 완성되어 있고 명해(明解)하여, ‘태어나서 먹고 배설하고 사랑하고 지쳐서 교활해진 다음 죽는다’라는 인간의 하찮고 작은 평범한 인생을 ‘그래, 결국 이런거야’라고 눈 앞에 접시에 담아 짠하고 건네주는 허무함을 느낀다.
그러나 이런 것은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 여기까지 말하지 않았지만 단연 선두에 있는 내가 우울해지는 음악이 있다. 그것은 비틀즈의 ‘Hey, Jude’. 맨 처음 ‘Hey, Jude’부터 들을 수 없다. 그것을 듣는 순간부터 수렁의 밑바닥에 떨어진 듯한 기분에 빠져들고 만다. 어째서 이렇게 우울해지는가하고 고민할 정도로 이 곡은 강력하다. 이번 기회에 그 이유를 진지하게 생각해봤지만, 비틀즈라는 누구와도 닮지 않은 밴드의 곡은 스트레이트에다가, 쿨하게 진실의 잔혹사로 가득 차있다. 그 현실 그대로 들어낸 잔혹함이 ‘Hey, Jude’에는 응축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인생은 마음 달랠 길 없고, 꼴사납고, 발을 동동 구르며, 혼잡하고 애절하다. 보통은 그런 것은 잊고 신경 쓰지 않는 척하고 있는데. ‘사실 너는 꼴사납고 솔직하지 않고 시시한 놈이야’라고 존경했던 사람이 귓전에 스윽하고 속삭인 것 같은 기분이 되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와서 퍼뜩 알게 된 것은 철두철미하게 심플하고 기괴함이라고는 없는 숭고한 멜로디에 우울을 느낀다는 사실이다. 왜 인생은 음악이 아닌 걸까 생각할 정도로 음악은 아름답다.(인생은 아름답지 않으니까 음악이 멋진 걸지도 모르지만). 결국 음악은 멋지게 완성된 것이면 것일수록 자신의 세계와의 거리를 느끼고, 그 거리의 크기에 낙담하는 것일까. ‘우울한 음악’은 생각하면 할수록 더욱 더 우울해지고 만다.

@허접한 번역이지만 대략 이런느낌?


온다리쿠의 에세이가 읽고 싶었는데 마침 소설이외 문고판이 있어서 읽기 시작했는데 소설의 바탕이 된 소재가 이거구나 등 이런 저런 것들을 알 수 있어서 즐겁다. 그 중에서 '우울한 음악'을 읽다보니 나랑 정반대더라. 온다리쿠가 언급한 짐노페디나 Gloomy Sunday는 내가 좋아서 환장하는 음악이라 오롯이 CD장에 자리잡고 계시다. 그레고리안 챤트도 좋다. 난 단조의 음악에 편안함을 느낀다. 듣고 있노라면 내 몸이 차분히 가라앉아 조용한 파도의 요람에 살랑사랑 흔들리는 느낌이 든다. 한동안 듣지 않았던 "Gloomy sunday"를 들으니 좀 숨통이 트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