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에 대한 부작용인지, 두 번의 전신마취 덕분인지 알 수 없지만
머리로 생각한대로 입 밖으로 단어가 나오지 않을 때가 부쩍 심각하게 증가했다.
와이파이 비번을 물어본다고 생각하고선
"여기 아이디가 뭐예요?"
핸드폰 배터리가 4% 남은 걸 보고선
"4분 남았다."
두통도 늘었고, 이제 온몸이 무겁기까지 하다.
지난 주까진 정말 최악의 몸상태였는데, 이번주는 제 컨디션을 찾아가는 중인지
조금은 두통도 무거움도 덜어낸 느낌이다.
하지만 몸이 피곤하니, 정신도 나약해져서는
나 스스로에 대해 하나부터 열까지 의심하게 된다.
이 나이 먹도록 죽고 싶을만큼 좋은 것을 손으로 꼽을 수 없다.
좋아서 미칠 것 같은 것이 내겐 없었다.
가장 좋아한다고 여겨온 책조차 이제 의심스럽다.
두 개의 책꽂이 이상의 책은 갖지 않기로 몇 해 전에 스스로와 약속을 했다.
그래서 읽고 남겨진 책들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책이다.
하지만 문득 생각나 오래 전 그 책을 찾으려하면 내 책꽃이에 블랙홀이라도 사는양
그 책은 행방불명이다.
유희열의 '익숙한 그 집앞'을 찾으려 했다가 없다는 걸 알고 얼마나 좌절했던지.
심지어 절판이더라.
어릴 적엔 좋아하는 책은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즐겁게 읽었는데
요즘 난 한 번 읽은 책은 다시 읽지 않는다.
과연 다시 읽지 않을 책을 갖고 있어야 하는 걸까.
한 때는 미국의 커다란 도서관이나 영국 어느 귀족의 서재처럼
사다리까지 있어야하는 웅장한 서재가 갖고 싶었다.
거기에 내가 읽은 순서대로 책을 줄 세우고 싶었다.
그것을 못했으면 독서노트라도 썼으면 좋았을텐데.
여전히 좋을텐데라고 하면서 중간에 얇은 노트 한 권을 채운 후로는 다시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몸도 마음도 분주했던 작년을 끝으로 올해는 너무 느슨하게 살고 있지 않은가 자책을 하게 되는데
생각해보면 그리 느슨하지도 않았다.
새 직장을 다니며 사장욕을 하고 있고, 그 사이에 전자책도 하나 했고, 자잘하지만 뭔가 하고 있다.
그러니 우울해 말자 생각하지만, 고작 그것해놓고 뭐하는 짓인가 싶기도 하다.
이래서 다이어리가, 일기가 필요한가보다,
내가 이러고 살고 있고나 한 눈에 보기 위해.
너무 기운빠져하지 말고
무언가 차분차분 채워나가야겠다.
한 줄 한 줄 치니 1000회 되더라는 김광석의 말처럼
난 한 줄 한 줄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