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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days

징기스칸이 먹고 싶네

by 따즈 2012. 8. 22.




내겐 몇 안되는 진리가 있다. 그 중에서 음식에 관련된 것을 꼽자면, 이쿠라우니동은 꼭 오타루에서, 매꼼한 낙지가 땡길 땐 종로 서린낙지, 맥주는 삿포로 쿠로라벨과 기네스(기네스는 최근에서야 그 맛을 깨달았음) 정도가 지금 머리에 떠오른다. 사실 입맛이 예민하나 까다롭지는 않아서 뭐든 무난하게 먹을 수 있는데, 때때로 저런 진리의 것을 먹고 마실 때 위안이 될 때가 있다. 


내가 내 맘대로 고향으로 삼아버린 북해도를 떠올리면 눈과 함께 지글지글 기름지게 구워지던 징기스칸이 생각난다. 북해도의 느끼하지만 맛있는 버터라멘도, 살살 녹고 신선한 이쿠라우니동도, 아픈 곳도 낫게 해줄 것 같은 스프커리도, 배불러서 못먹을 때까지 먹던 게 부페도, 따끈따끈한 감자고로케도, 보드랍게 살살 녹는 치즈케익도  몹시 좋아하는데 이들은 꼭 같은 것은 아니어도 내 탐욕을 어느 정도 해갈시켜줄 대체식품이 존재하지만, 해묵고 좁은 공간에서 온몸에 양고기 냄새를 새기며 지글지글 구워먹던 징기스칸은 삿포로까지 가서 먹지 않으면 안되는 안타까운 음식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징기스칸은 몇 곳에서 맛을 봤지만, 역시나 내 취향에 부합되는 곳은 다루마.  김치와 창자(젓)의 메뉴로 알 수 있듯, 이곳 주인장은 한국인(엄밀히는 북한인?)이라고 한다. 지금은 여러 분점이 생겼는데, 다루마 본점은 열 댓 명이면 가득 채울 수 있는 공간이다. 그 좁고 환기도 잘 안되는 공간에서 양고기를 지글지글 구워먹는데 물론 양고기도 내 입맛에 맞지만, 그 분위기가 내 입맛을 돋군 것은 확실하다. 퇴근하고 한 잔 하러온 양복입은 아저씨가 혼자서 네,다섯 접시(1접시=1인분)을 헤치우는 모습이 얼마나 맛있어 보였는지.


얼마 전 홍대에서 지인들과 만나, 밥을 배불리 먹고 무거운 배를 삭히느라 산책을 했는데 우연히 다루마야를 발견했다. 내가 이 간판을 보고 얼마나 기뻤는지는 괜히 말해봤자 입만 아픈 일. 너무 반가운 나머지 삿포로의 다루마를 함께 했던 친구들에게 열심히 문자를 날렸다. 이런 곳이 있소!라고. 사실 간판만 보고 이 집 맛이 어떨지 짐작이 안되서 살짝 걱정을 했더랬다. 징기스칸을 처음 접하는 지인들과 이곳을 방문했는데, 왠걸 너무 맛.있.었.다. 가게가 넓긴 했지만 다루마랑 비슷한 구조였고 양념도 비슷하고 양고기는 기름이 좀 적은 편이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처음 먹는 지인들도 부담적게 맛있게 먹은 듯 하다. 그리고 다루마에서 밥을 시키면 양고기를 찍어먹던 양념장을 넣고 따끈한 차를 부어 오차즈케를 해 먹을 수 있는데, 여기도 그 서비스가 있어서 대만족. 다루마랑은 달리 다루마야에는 양갈비가 있는데 요 양갈비도 참 맛있었다. 직접 구워먹던 다루마랑 달리 친절한 점원들이 알아서 쓱쓱 구워줘서 좋았다. 센스있게 페브리즈도 준비되어있고.


아아. 오늘따라 징기스칸이 무척 땡기네. 차가운 맥주에 양고기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