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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days

내 어머니

by 따즈 2007. 6. 4.

누구든 자신의 어머니를 보며 애달픔을 때때로 느끼겠지만, 난 그것이 유독 심하다. 동생이 태어나기 전까지 그러니까, 유치원 때까지 엄마 젖을 찾았다는 나는 모친과의 유착관계가 심한 편이다. 한번도 어머니에게 맞은 적 없고(아버지에게도 없지만) 어머니는 내가 하는 일을 그것이 무슨 일이든 말리시는 법이 없이 전폭 지지 하셨으며, 나는 어머니가 싫어할 법한 일은 알아서 하지 않았다.  어머니와 나는 입맛도 똑같고 관점도 똑같아 외모만 다른 이란성쌍둥이 같다. 물론 어머니가 더 이쁘다는 비애는 어쩔 수 없다. 어릴 적부터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는 농담은 들은 적은 없지만 아버지 축소판이라며 다른데서 아버지가 낳아 데려온 자식이라고 놀려댔다. (매정한 어른들. 세상은 얼마나 가혹한가) 그렇다고 해서 아버지에게 외모만 뺀 것은 아니어서 독학과 문구를 좋아하는 성향과 어머니에겐 없는 냉정하고 쌀쌀함이 내겐 있다. 아버지도 어머니만큼 사람에 대해 선한 사람이지만 때때로 발휘되는 기질 하나가 내게 온 듯하다. 난 때때로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차가워진다.

나의 어머니는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는 미용실을 경영하셨고 중학교 이후로는 아프셨다. 정말 깊은 푸르름이 살아있는 녹지에 굽이져 급하게 흐르던 개천이 있는 산중턱 마을에서 자란 어머니는 도시까지 미용과 양장을 배우러 다니셨고 어머니의 마을여자들은 어머니의 손에 의해 처음으로 쪽진 머리를 자르고 파마를 했다. 그 후로도 어머니가 외가에 가면 언제나 동네아주머니들 파마를 해주던 기억이 난다. 미용실에 가만히 앉아서 책을 보거나 TV를 보거나 손님구경을 하거나가 내 일과였다. 난 항상 어머니 옆에 있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보이기만 하면 안아달라거나 보채지 않고 가만히  있어서 나를 항상 일터에 두곤 하셨다고 한다. 지금도 난 사람구경하는 것이 좋고 어머니의 미용실이 아닐지라도 어디든 미용실에 가 머리를 맡기고 앉아있노라면 기분이 좋다. 물론 취향이 나와 전혀 다른 스타일리스트들 덕분에 스트레스가 쌓일 때도 있지만.

내가 처음 만들어 본 김밥은 어머니를 위한 것이었다.  테레비에서 보면 병원밥은 맛없다며 무언가를 들고 가니까 친정이 먼 엄마를 위해 내가 생각해낸 것이 김밥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레시피없이 먹어본 것을 기억하며 만드는 타입이라 쓱쓱 만들면 비슷한 맛이 나온다. 김밥을 담아갈 소풍용 도시락통이 단도 많고 해서 김밥도 여유있게 만들고 매콤한 것을 좋아하는 어머니를 위해 오징어도 볶고 이것저것 찬거리를 채워서 낑낑 대며 가져갔다. 중학교의 나는 지금의 나보다 훨씬 지리에 약했는데 이사간지 얼마안된 동네에서 물어물어 동생 손을 잡고  버스타고 지하철타고 어머니가 입원해 있는 병원에 갔다. 정작 어머니는 별로 손대지 못하고 같은 병실 아주머니가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후에 말씀하시길 우리가 돌아가고 한참을 우셨다고 한다. 지금도 어머니는 나나 동생이 만든 음식은 잘 드시지 않는다. 어머니는 처음부터 나에게 주방일을 시키신 적이 없다. 앞으로도 건강하신동안 계속 맛있는 음식을 내게 만들어주시겠지. 어머니는 일손이 넘치는 종가집 큰딸이라 손에 물 한방울 묻히지 않으시고 자라셨단다. 그래도 어머니의 음식은 참말 맛있다.

지금처럼 오랜기간 멀리 있어본 적은 없지만 난 여전히 어머니의 딸임을 느낀다. 내 손끝에선 어머니의 맛이 나오고 내 머리에선 어머니의 생각이 전해진다. 멀어도 이어져있다는 것을 실감한다.나는 어머니를 사랑한다.

오래오래 건강하시길.